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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만져지는거

1회용 건전지의 재충전, 에너로이드

by 킴부차 2020. 2. 16.

 건전지는 휴대용 전자기기에 선 없이 전기를 공급해주는 아주 고마운 물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전지는 1회용이며, 재충전이 가능한 충전지는 대체로 가격이 5배정도 비싼 편이다. 물론 충전지를 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득일 수 있지만, 건전지가 필요한 필요한 곳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 모든 곳을 충전지로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건전지를 구입하여 기기에 넣고, 필요할 때에만 작동시켜서 최대한 건전지를 오래 쓰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사실 건전지도 재충전이 가능하다. 단지 한 번 사용된 1차 전지를 재충전하면 성능이 저하되고, 불순물로 인한 폭발 위험이 내재되어 권장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문제가 있는 건전지를 자동으로 판별하여 재충전이 불가능한 건전지는 버리고, 어느정도 살릴 수 있는 건전지는 다시 살려주는 기계가 등장했다. 국내 벤처기업 "시큐라인"에서 만든 "에너로이드"라는 제품인데, 뭐 회사 정보나 이런게 궁금해서 이 글을 열람한건 아닐테니 궁금한 사람은 알아서 찾아보고.

 와디즈에서 펀딩한 제품인데, 사실 크라우드펀딩이 사기치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고 와디즈는 말이 너무 많아서 "믿고 거르는 와디즈"라는 말도 있기에 조심스럽게 펀딩했다. 우선 이 제품이 두 번째 버전이기도 하고 첫 번째 버전도 평이 나쁘지 않아서 믿고 돈 박고 기다렸다. 예상일보다 한달정도 늦게 온 것 같은데, 뭐 리워즈형 펀딩이 한두달 늦는건 요즘은 기본이라 언젠간 오겠거니 하고 기다렸더니 왔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1차 전지를 충전해서 조금 더 쓰게 만들어주는 제품, Eneroid!

 귀찮아서 언박싱 사진 안찍었다. 동영상도 안찍었다. 사실 찍을게 없다.

대충 뭔가 정화된 HAL9000같이 생겼다. 

 에너로이드의 뚜껑을 열고 다 쓴 1회용 건전지를 대충 넣으면, 알아서 충전 안되는놈은 걸러지고 되는놈은 충전된 후 보관함에 빠진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극성을 맞춰넣지 않아도 알아서 어디가 +고 어디가 -인지 인식한 후 충전을 해준단다. 사소하지만 이런거 좋다.

 아마 중소기업 + 펀딩 완료 후 쫒기는 마감 + 명절 쓰리콤보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감이 좋지는 않다. 근데 뭐 건전지 충전에 무리는 없어보이니 마감상태는 알 바 아니다.

 

엔간하면 이런 제품들은 Micro USB-B 타입이 들어가는데, 이건 USB-C타입이다. 어서 C타입이 대중화가 되어 A랑 B 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얘도 아무튼 전자기기이므로 당연히 전기가 필요하다. 게다가 얘는 전기를 소모할 뿐만 아니라 공급까지 해주는 녀석이니깐 빵빵한 전기가 필요하다. 제조사에서는 5V-2A 이상을 권장하며 최소 1A는 되어야 한다고 가이드하고있다. 

 

뚜껑을 열고 여기에 건전지를 넣으면, 저 아래 구멍으로 들어가서 강제로 충전당한다. 내가 건전지였다면 굉장히 무서웠을 것이다.

 내부는 생각보다 별 거 없다. 물론 그 속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고심하여 만들어낸 구조로 되어있게지만, 사용자인 우리는 그런거 몰라도 된다. 그저 건전지만 잘 충전하면 될 뿐이다.
 속에 충분한 공간과 모터가 있어서 충전할 건전지들을 왕창 넣으면 알아서 끝나서 좋다. 다음 전지를 넣기 위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아주 좋다.

 

아늑한 보관함

 물론 개중에는 더 이상 충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전지들도 있을 것이다. 이미 속이 많이 달아서 충전해도 효율이 안나온다던지, 아니면 뭔가 문제가 있다던지. 에너로이드는 그런 건전지들을 판별해서 충전 불가 건전지(불량)는 보관함의 왼쪽에 매몰차게 버려버린다. 충전 되는 애들만 끌고가겠다는 이 자세가 아주 냉정하다.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 있는 저 벽은 고작 1mm정도밖에 안되지만 낙오자들을 나누는 장벽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는데 불량으로 판별된 전지도 다시 충전을 시도하면 충전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제품은 세상에 낙오자로 분별된 사람은 없으며, 낙오된 자들도 기회는 있다는 것을 주장이라도 하고싶었던걸까.

 

생긴건 공기청정기인데..
이건 다시 흐콰하는 HAL9000인가

 전원이 연결되면 푸른 불빛이 들어오며, 버튼을 누르면 빨간 불빛과 함께 충전이 시작된다. 충전 시간은 뭐 꽤 걸리므로 그냥 신경 끄는게 나아보인다. 당연히 충전중에는 아무런 소리도 안난다. 그래서 가끔 지혼자 건전지를 보관함으로 넘길 때 나는 소리에 나 혼자 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고양이를 키우지 못해서 너무 속상한데, 이런 나를 위로라도 하려는걸까, 지 혼자 움직여서 인기척을 내는 모습에 감탄했다.

 앞으로 더 써보고 충전된 건전지도 써봐야 실제 성능과 결과를 알겠지만, 우선 충전이 되는 모습을 본 것 만으로도 좋은 제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건전지는 일반 쓰레기가 아니며 그 속에 복잡하고 위험한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서 버리기가 까다로운 물건 중 하나다. 그럼에도 자주 쓰이기에 꽤 난감했는데, 심지어 1회용이라 자주 버려져야만 해서 아쉬웠다. 이제 이 제품을 통해 1회용품 낭비를 최소화하여 환경을 보호하고, 건전지에 나갈 돈을 절약하며, 건전지를 버리는 번거로움도 줄여나가서 더 깨끗해지고 향상될 우리의 삶과 세상을 기대해볼 수 있음에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하루빨리 건전지&배터리 기술이 발전했으면 좋겠다.